신산업·신기술 족쇄 풀어 일자리 창출 ‘신속

정부가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토대라고 판단하는 ‘규제 혁신’ 정책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 도입이 규제의 불확실성과 인·허가 과정의 비용을 크게 줄여 새로운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규제 샌드박스 도입

규제의 존재 여부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규제 신속 확인’ 제도 등 ‘규제 샌드박스(sandbox)’ 3종 제도가 1월 17일부터 도입됐다. 기업들이 신기술과 관련한 규제가 있는지 문의한 뒤 정부가 30일 안에 회신을 하지 않으면 규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안전성과 혁신성이 뒷받침된 신제품·신서비스인데도 관련 규정이 모호하거나 불합리해 시장 출시가 어려운 경우 임시 허가를 통해 출시를 앞당기게 했다. 또한 관련 법령에 금지 규정이 있어서 신제품·신서비스의 사업화가 제한될 경우에는 일정한 조건하에 기존의 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 실증 테스트(실증 특례)도 가능해졌다.


규제 샌드박스 시행 첫날인 17일까지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위해 기업들이 임시허가나 실증특례를 신청한 사례는 총 19건이다.


정보통신기술(ICT)융합 분야에는 KT와 카카오페이가 각각 '공공기관 등의 모바일 전자고지 활성화'를 위한 임시허가를 신청했다. 산업융합 분야 대표 사례는 현대자동차의 '도심지역 수소차 충전소 설치 요청'이다. 그동안 규제 때문에 수소차 충전소 설치가 불가능했지만 이번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실시로 일부 지역에 충전소를 설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규제 획기적 전환, ‘먼저 시도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0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규제 혁신’을 통한 신산업 발전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규제 혁신은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의 발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새로 시행되는 “한국형 규제 샌드박스가 신기술·신제품의 빠른 시장성 점검과 출시를 도울 것”이라고 했다.


‘규제 샌드박스’란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처럼, 스타트업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도록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하거나 유예함으로써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 가능한 환경을 말한다.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복잡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로 사업 단계에서 좌절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영국이 핀테크(금융+기술) 산업 육성을 위해 2015년 처음 도입했고 호주,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캐나다 등에서도 실시됐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의 연구원은 “기존 규제에 어떻게 적합한지를 심사하는 게 아니라, ‘먼저 시도하라(Try First)’는 개념이란 점에서 규제 패러다임의 획기적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그동안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산업통상자원부 등 4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 추진 계획을 논의해왔다. 지난해 3월 ‘규제혁신 5법’이 국회에 발의됐고, 이 가운데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외한 4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주관하는 산업융합촉진법·정보통신융합법은 1월 17일부터 시행됐다. 금융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주관하는 금융혁신법·지역특구법은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신청-심의-실증’ 맞춤형 지원

정부는 사업자의 ‘신청-심의-실증’으로 이어지는 ‘전 주기별 맞춤형 지원정책’을 진행한다. 부처별로 사전 상담 전문기관을 지정해 선정된 기업은 일대일로 기술·법률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우수 실증 특례사업은 시제품 제작, 데이터 분석 등 실증사업 비용을 지원토록 했다. 중소기업의 보험가입 부담 경감을 위해 보험료 일부도 지원된다. 기존 사업자와 갈등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자 간 사전 논의·조정을 위한 갈등조정위원회를 운영한다.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유연한 규제 적용으로 기업의 기술혁신과 혁신창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며 “소비자는 신제품·서비스 선택권이 확대되고, 정부는 합리적으로 규제를 정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으로 규제 특례 부여 여부를 심사하는 부처별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분기별로 1회 이상 개최할 예정이다. 시행 첫 6개월 동안에는 제도 안착을 위해 심의위를 수시로 열 계획이다. 산업부와 과기부는 심의위원회 구성과 운영계획, 사전 수요조사 결과 등을 발표하고, 다음 달 1차 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두 부처의 사전조사 결과 신청 희망 기업 수요는 20건가량으로 확인됐다. 규제 샌드박스의 첫 사례는 도시지역 수소충전소 설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전조사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할 10개 사례를 발굴한 산업부는 “규제 샌드박스 1호 사업은 미래 친환경차를 위한 수소충전소 설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현재 사업자들로부터 강남 탄천 등 서울 시내 6곳에 대한 수소충전소 설치 요청을 받아놓은 상황이다. 수소충전소는 수소전기차 확산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로, 프랑스 파리 도심인 샹젤리제 거리 인근에 설치돼 있을 정도로 안전성이 검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