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강현실(AR), 어디까지 봤니?

SF소설의 거장 아서 C. 클라크는 말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고.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 마법이 “우리 삶에 가까이 와 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는 지난 4월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회의인 ‘F8’에서 “증강현실은 우리의 모든 기술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포켓몬고’는 증강현실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먼저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상현실은 가상의 이미지를 이용하고, 증강현실은 현실의 이미지와 배경을 이용한다. 가상현실 게임은 ‘가상의 나’와 ‘가상의 적’이 대결하지만, 증강현실은 ‘현실의 나’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한다. 지난해 인기를 모았던 ‘포켓몬고’를 떠올리면 쉽다. 하지만 증강현실은 그 현실 안에 함께하는 이들에게만 나타난다. ‘포켓몬고’를 깔지 않은 유저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몬스터를 발견하지 못한다. 함께 있어도 다른 현실을 볼 수 있는 시대, 증강현실의 시대다.


AR, 드라마가 되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드라마 안에 증강현실을 도입했다. 남자주인공 유진우(현빈)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끼어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적과 숱하게 칼싸움을 벌인다. 숱하게 죽이고, 숱하게 죽는다. 클래식 명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이 은은하게 울리면, 유진우의 현실에는 첨단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게임이 시작된다.


▲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실과 게임 속을 오가는 증강현실을 소재로 화제를 모았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쓴 송재정 작가는 2016년 드라마 ‘W’에서 현실에 사는 여자(한효주)와 웹툰 속에 존재하는 남자(이종석)의 두 세계를 그린 바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현실에 사는 남녀가 있고, 이 현실 위로 ‘증강현실’이 열린다. 드라마의 주인공 현빈과 박신혜는 “대본의 힘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가 열렸다”고 말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 드라마는, 앞으로 현실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예고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현실 속 다른 현실을 보는 건 남자지만, 여자는 남자의 말과 행동을 환각이라 여기지 않고 믿어준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남자, 그는 현재 게임의 세상 속에 갇혀 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틀리며 균열을 일으킬 때, 우리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가는 보이지 않는 칼과 총이 난무하는 이 세상을 설계해두고, 시청자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떨 것 같으냐’고. 멀지 않은 미래가 우리 앞에 와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극 중에서 게임 속에 있는 이들은 칼과 방패를 가지고 저마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현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모습은 텅 빈 광장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마법에 걸리지 않은 이들의 눈으로는 마법을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드라마에 게임이 등장하고, 현실과 CG가 절반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방영 3주 만에 시청률 8.6%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TV뿐 아니라 넷플릭스에서도 함께 방영되고 있다. 생소한 소재라고 여겼던 AR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출하고 있는 안길호 PD는 전작 ‘비밀의 숲’에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호평받은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현란한 기술뿐 아니라 기술 앞에 선 인간의 고뇌도 담았다.


“증강현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습니다. 환상과 현실의 접점을 찾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다가갔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증강현실 역시 우리에게 곧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증강현실, 우리 곁에 다가온 미래


드라마뿐 아니다. 증강현실이 ‘현실’이 됐다. 서울시는 서울 사대문 중 하나인 돈의문을 증강현실로 복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는 문화재청, 우미건설, 제일기획 등과 함께 복원 방법을 모색하던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첨단 디지털 기술인 증강현실로 돈의문을 재현할 방안을 고안해냈다고 밝혔다.